저는 원래 청소도 엄청 잘하고
정리도 끝내주게 잘하는 정리왕입니다.
친구들이 현관에 들어서면서부터
집이 모델하우스냐고 할 정도로요.
올해 퇴사 후 집에 머무는데
옷장, 서랍장, 창고, 싱크대를 열어보고
적잖이 놀랐습니다.
그동안 직장생활하면서
나름 살림도 잘한다고 자부해왔는데,
뭔가에 홀려 정리 한번 해볼까 하고
열어본 장 속에는
정말 반듯반듯하게 넣어진 쓰레기들 투성이더라고요.
이사한 지 10년 동안
꺼내보지 않은 것들,
더 이상 쓰지 않지만
언젠가 쓰지 않을까 넣어둔 냄비들,
한때 최애였던 명품 가방들…
정말 쓰레기를 곱게도 정리해서
들어갈 공간만 있으면
잘도 넣어뒀더라고요.
그걸 보는데 숨이 턱 막혀서
전부 꺼내서 다 버렸습니다.
밍크, 무스탕, 명품 가방,
안 입는 옷들부터
쓰지 않는 살림들,
대학 때 읽었던 책들까지.
다 버리고 나니
이제 장을 열어도 숨 쉴 공간이 생기고,
서랍장도 열면
꼭 필요한 것만 있네요.
타지에서 직장 생활하는 아들이
이번 추석에 오더니
집이 호텔 같다고 하더라고요.
물론 함께 사는 고3 늦둥이 딸내미는
엄마 물건들 중 찜해 놓은 게 있는데
사전 예고도 없이 다 버렸다고
투덜대긴 했지만,
내년에 대학 들어가면
그에 맞는 가방 사준다고 하니
다행히 불만은 쏙 들어갔습니다.
장을 하나씩 열어보면
빈 공간들이 보이니
물건을 너무 버렸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,
사실 10년 동안
한 번도 사용 안 한 것들이 태반이기에
괜찮아요.
이제야 진정한
정리의 신이 된 것 같다는 생각에
뿌듯합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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